▲ 발행인 백승안

[매일경남뉴스 백승안 기자] 1951년 2월 9일!

올해 69주기를 맞는 거창양민학살이 발생한 날이다.

산청과 함양에서 705명의 양민을 학살한 뒤 거창군으로 이동한 국군은 1951년 2월 9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로 들어가 가옥에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끌어내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해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빨치산 토벌을 위한 작점을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이 학살은 11일까지 사흘간 719명이 우리 국군에 의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건이다.

대참사의 서막을 알린 집단학살 첫날인 9일 청연마을 주민 84명이 숨졌고 10일에는 탄량골짜기로 끌고 가 100여명을 학살하고 불을 질러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주민 1천여 명을 신원국민학교에 수용한 군인들은 이튿날인 11일, 경찰과 공무원 가족들을 골라내고 남은 사람들은 박산 골짜기로 끌고 가 517명의 주민을 학살하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거창에서 우리 국군이 우리 국민을 학살한 사흘간의 만행으로 신원면 일대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719명(기타지역 18명 포함)이다. 그 가운데 14세 미만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이 넘고 60세 이상 노인이 59명으로 희생자 58%가 어린이와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진상은 은폐되고 공비들과 내통한 이적행위자로 내몰려 명예까지 훼손당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희생자들의 배상은 진상은폐에 급급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군부에 의해 무산되었고 당시 만행을 저지른 군인들은 사건축소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받았다.

이후 유족들의 분노와 피맺힌 한은 4·19혁명과 함께 분출되기 시작했고 위령비 제막은 할 수 있었지만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에 의해 유족 17명이 반국가단체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군사정권의 개장명령에 의해 합동묘소는 파헤쳐지고 비문마저 땅에 파묻히는 수난을 당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18년 동안 유족들은 죄인처럼 침묵을 지키며 숨죽여 살아왔다. 그 후 45년만인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가까스로 공포되어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초석이 놓았다.

그러나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완전한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보상내용을 추가한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민주당 우윤근, 김병욱 의원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천문학적 배상금액에 대한 정부의 부담으로 법제정이 난관에 부딪혀 자동폐기 됐다.

국군에 의해 학살된 우리 국민들의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조차 제대로 해주진 않는 국가는 절대 나라다운 나라일 수 없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국군이 오히려 그 국민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면 당사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고 국가는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올해로 69주년을 맞는 위령제에 참석하는 유족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유족들의 흐느낌은 더욱 깊어가고 억울함에 분노하는 몸부림이 처절하면서도 갈수록 움직임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불행한 과거사 청산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69년 긴 세월 동안 한을 품고 있는 희생자와 가슴속 깊은 곳에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유족들의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

특히 왜곡되고 은폐된 진상으로 인해 피해를 받으며 살아온 거창군민들은 결코 이 사건의 참혹함과 선량한 양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학살극을 벌인 만행으로 불행함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꼭 기억하자! 2월 9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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