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백승안

[매일경남뉴스 백승안 기자] 거창군의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거창군 간부 공무원이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거창군 최대현안 추진과정을 보고받던 군의원이 갈팡질팡하는 군정을 지적하며 일관성 있는 군정 추진을 강조하자 거창군 담당부서장이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파문이 일자 ‘공무원은 군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개별적인 인격이 아닌 제도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움직이는 게 관료제도의 특징’이라고 규정한 데 비춰 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길게는 수십 년 씩 걸리는 대형프로젝트 사업과 미래백년대계를 결정짓는 주요 사업은 연속성과 지속성 그리고 일관성이 필수적인데 정권이 바뀌면 거의 예외 없이 공무원의 ‘영혼’이 도마에 오른다.

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그동안 진행되어오던 사업들이 수정되거나 축소되고 더 나아가서는 중단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예산낭비와 지역발전 속도가 감속되는 등 그 피해가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몫으로 안겨진다.

새로 취임한 군수의 뜻에 따라 이전 군수의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도 한다.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마다 중단 또는 수정되기도 한다. 특히 거창은 최근 수년 동안 2년마다 군수가 바뀌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해 추진 중이던 크고 작은 현안들이 변경되거나 중단되고 정반대 방향으로 군정의 방향이 전환되어 군민 불편 초래와 군정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켜 왔다.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권 관련 법정소송, 거창구치소 신축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 군수시절 정책 기조와 180도 달라져도 해당 정책 책임자들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어제와 오늘 하는 일이 정반대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내놓으면서 오히려 군민들을 혼란에 빠뜨려 '공무원 영혼'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군의회 업무보고에서 소신 없는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을 꼬집으면서 군정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에 해당부서장 스스로 ‘영혼’ 없음을 당연하다는 식의 발언과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을 밝혀 소신과 전문성을 가지고 소신 있게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히고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잘못된 공무원 자세를 취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의 일탈로 거창군과 군의회 간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거창군 발전과 미래비전을 확보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업마저 무산될 위기를 자초했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쫓아 심기행정으로 일관하는 YES-Man이 의욕만 앞세운 과유불급이 불러온 폐해이며 치킨게임을 벌여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는 비난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새 정부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발의한 일명 ‘영혼 없는 공무원 방지법’도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는 병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 중 한가지 일 수 있다.

이렇듯 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서 영혼 없는 공무원에 대한 근절대책을 일찌감치 세워 강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 스스로가 군민 대표기관인 군의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군정에 대한 지적과 함께 그 입장을 묻는데 업무연속성과 일관성을 훼손하더라도 군수지시에 따라 맹목적인 복종과 충성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며 국민과 함께 항상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소신을 가진 공무원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군의원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군의원도 영혼 없기는 매 한가지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눈총을 받기에 충분하다.

군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을 가지고 군민 행복과 군 발전을 위해서 올바른 군정 추진을 주문하고 잘못에 대한 지적과 함께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무를 가진 군의회에서 이런 마인드를 가진 공무원이 업무보고를 하는 것 자체가 황당할 뿐 아니라 납득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군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예산과 사업에 대한 의결, 승인권이 있는 군의회 보고를 소홀히 해서 추진 중이거나 새롭게 추진하려는 신규 사업 등 주요 군정이 중단되거나 추진조차 못하고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향후 조치를 눈여겨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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