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남뉴스 최혁열 기자] 거창군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추진했던 도 공모사업에서 가북면 다전마을 ‘면우선생 유허지 복원사업’이 제1순위로 선정돼 교부금을 확보함으로써 인재·여재 복원사업에 탄력을 받게 됐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사실 그간 면우 선생 같은 위대한 분이 거창지역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는 현창사업을 하지 못한 면이 있었으나, 늦게나마 자체 사업 선정으로 자칫 잊혀 질 뻔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면우선생(1846~1919)은 영남학파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 발전시킨 유학자이자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유림 대표로 가북 다전 마을에서 “파리장서”를 최종 검토하여 제자인 김창숙 선생을 통하여 제출하게 한 독립 운동가로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분이다.

선생께서 1896년 거창으로 이주한 이후, 가북 다전마을은 구한말 구국의 지혜를 찾는 경세가와, 어사, 그리고 시인 묵객 등 당대 지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1903년 빈객과 문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여재(如齋)를 지었으며, 1905년 을사보호조약 반대 상소문작성, 1910년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 하였으며, 1915년에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여재(如齋)의 동쪽에 인재(寅齋)를 지었다. 또한,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망곡례를 지내고 파리장서 운동을 주도 하였다.

다전마을 주변 발자취로 ‘침우정(枕雨亭)’과 선생께서 강학의 여가에 제자 방숙을 앞세우고 용담근처 수석에 이름을 붙여준 ‘활수란, 와룡담, 장란암, 요병만, 반타석, 서사천’ 등 6개의 음각 바위가 있고, 인근에 다천서원, 창덕사, 면우선생 묘소가 있으며, 후손으로 곽도령, 곽진 교수, 곽합 준장 등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김근호 복지정책과장은 “면우선생의 비중에 비하면 복원사업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가북 다전마을이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유림운동의 본거지로 재조명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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