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백승안

[매일경남뉴스 백승안 기자] 전국의 243개 지방자치단체(광역 17, 기초 226)에는 많게는 3명, 적게는 1명의 부단체장들이 단체장을 보좌하며 자치단체의 조직을 이끌고 살림을 살고 있다.

거창군도 예외가 아니다. 경상남도에서 4급 서기관을 임명해 부군수로 내려 보낸다. 도청 과장들이 서기관 급이고 거창군 자체에도 서기관이 2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군수로 임명받아 군으로 내려오면 일약 부단체장으로 신분 상승이 되고 같은 서기관 위에 군림하는 ‘서기관 A+’대우를 받는다.

민선단체장을 제외한 임명직 공무원 중 으뜸인 부단체장으로 신분이 뛰어 올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직위를 지니고 인사위원장·경리관을 겸임하며 공무원들의 근무평정, 승진, 전보 등 인사를 총괄하고 각종 공사·용역 계약과 예산지출 등 대부분의 군정에 부군수의 도장(서명)이 찍혀야 될 정도의 무소불위 권력을 갖게 되고 관사·승용차(운전기사 포함)·업무추진비(수천여만 원)·개인 집무실(비서실 포함) 등을 지원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부군수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어 볼 때 그 대답이 모호해진다. 지난 1995년 자치단체 출범 이후 군은 군민들이 뽑은 민선군수에 의해 모든 군정이 운영되고 있다. 그 아래에는 각 부서에 실·과장들이 있고 실·과에 소속되어 있는 각 계에는 계장과 담당공무원들이 있어서 모두 자기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또, 실·과장들에게는 부서별로 일정부분 서열이 있어 군수 부재 시에 언제라도 일사불란하게 회의도 할 수 있고 민원 처리 및 대민활동도 펼 수 있는 구조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 사실상 부군수는 없어도 군 행정은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외부행사도 마찬가지다. 군수가 없을 때 대신해서 그 자리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역할은 해당 실·과장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기능이다. 또 주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군수를 만나보고 싶어 하고 그렇지 못한 불가피한 경우라면 그동안 거창군에서 오래토록 근무하며 함께해 온 실·과장 아니면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챙겨 준 계장 또는 담당공무원 만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도지사가 임명하는 부군수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면서 조직내 옥상옥을 만들어 동일직급 간 상하관계를 형성해 조직의 위계질서를 흔드는 것은 물론 지방자치제도 취지에도 어긋나고 지방자치법에도 위배되며 불필요한 인력과 시설 운영에 따른 예산낭비가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될 당시 해당광역단체장의 임명에 의한 부군수 제도를 운영한 이유는 광역단체와의 원활한 업무 조정이라는 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출범 25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임명직 부군수 무용론이 확산되고, 급기야 임명직 부군수들의 행보는 말 그대로 정중동·복지부동으로 일관하면서 자신들의 경력 쌓기에만 전념할 뿐 지방행정 발전에는 도움이 못되고 있다는 여론이 공무원 사회에서는 공공연한 정설로 치부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민선자치단체장에 의해 운영되는 자치단체는 광역단체 공무원인 부군수가 없다고 해서 광역단체와 업무체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요즘 들어 아무도 없다. 그보다는 광역단체의 승진 적체인력을 해소하고 광역단체 공무원의 승진 및 순환보직 자리로 악용되고 있는 성격이 크다. 더 나아가 부군수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절대적이고 민선군수 못지않은 처우를 받음으로 인해 광역단체와 기초자치단체 공무원 간 위화감 조성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주민들도 현행 부군수직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들이 많다. 필요한 자리라면 당연히 유지되어야 하겠지만 명분만 가지고 있는 현재와 같은 부군수는 반드시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시대변화에 맞는 부군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군정현안과 지역정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군수를 보좌하고 오랜 경험으로 군 발전과 군민 행복을 위해 지역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찾는 것은 물론 모든 군정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군수의 몫일 텐데 그런 모습이 없는 것이 큰 문제다.

그동안 거창부군수로 부임했다가 1년에서 2년 근무한 후 도청으로 복귀하거나 퇴임을 한 부군수들 중 일부 부군수는 무소불위 권력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권한을 가지고 특혜에 가까운 지원과 공무원들로부터는 극진한 예우를 받는 것으로 만족했거나 부군수로 부임하는 첫날부터 다시 도청으로 복귀해 국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 스쳐가는 자리로 여기고 자신의 입신광명에만 전념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직사회 분위기와 공직자로서의 한계를 백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혈세로 생활을 영위하고 부군수의 직위에 오를 정도의 고위공직자라면 투철한 사명감과 솔선수범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 공무원 사기진작과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을 충만케 하는 공직사회 문화 조성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단체장이 집안에서 아버지 역할이라면 부단체장은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하며 부군수의 따뜻한 포용력과 소신 있는 공직자로서의 자세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거창군 발전과 거창군 공직사회에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는 마중물 역할을 촉구한다. 또한,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의 건재함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자식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불속이라도 뛰어드는 희생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어머니 역할이라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이치를 깨닫고 모든 공직자의 귀감이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한 업무를 위한 공직기강 확립은 물론 공직자들이 공무를 수행 과정에서의 공(功)은 돌리고 과(過)는 자신이 감당하는 책임자로서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권한의 양 만큼이나 책임감에 대한 양은 같아야 한다. 공직자는 언제나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가면 안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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